櫓谷 노경식과의 기나긴 연극... |
임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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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노경식희곡집 제6권
櫓谷 노경식과의 기나긴 연극인연
임 영 웅 (연출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극작가 노경식씨와의 연극인연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찍이 30대의 새파란 나이에 고인이 되어 우리 연극인의 마음을 슬프게 했던 영미연극 번역가 朴英姬(1941-1973)의 소개로 그의 작품 <달집>(1971)을 알게 되고 그것을 국립극단에 추천하고, 또 그 작품을 내가 연출해서 명동국립극장에 올리게 된 것이 첫 인연. <달집>은 그의 첫 장막극으로 공연성과가 좋아 그해의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여자주연상(백성희) 여자조연상(손숙) 연출상(임영웅) 희곡상 등을 휩쓸다시피 했으니 햇병아리(?) 작가로서는 화려한 데뷔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래서 내가 어쩌다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은 ‘노경식 <달집>은 임영웅을 만나지 못했으면 몇 년은 더 걸렸을지도 모르지! ㅎ ㅎ --’ 그로부터 노경식씨와의 인연은 어느덧 4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게 얼굴 한 번 붉히는 일도 없이 다정하게 살아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나는 노경식의 희곡을 그후로도 세 작품이나 더 연출하게 됐으니 인연치고는 보통이 넘는다 할 것이다. <黑河>(국립극단 78), <하늘만큼 먼나라>(산울림 85), <침묵의 바다>(국립극단 87) 등. <하늘만큼 먼나라>는 우리 극단 「산울림」의 공연작품으로 그해 서울연극제에서 작품대상과 남녀 주연상(백성희 조명남), 연출상(임영웅) 등 4개 부문을 받아냈는데, 어찌된 셈인지 유독 노경식의 ‘희곡상’만 빠지게 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낸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추억하면 잠시잠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없다. 그러고 보니 동일한 한 작가의 작품을 4편 연출한 것은 임영웅 나로서는 지금까지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그의 작가적 실력과 기량을 충분히 믿고, 또 인물의 됨됨이와 인격을 신뢰한다고 말해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난 2년 전에 『노경식희곡집』전5권을 상재하고 아르코대극장 로비에서 화려한(?) 출판기념회를 가질 때 내가 초청인 대표로서 인사말씀을 한 기억이 새로운데, 이번에는 또 제6, 제7권을 보태서 그의 희곡집을 집대성할 생각이라는 소식을 듣고 놀라움과 찬탄을 금할 수 없다. 노경식희곡집의 ‘총목록’을 받아보니 무려 41편이나 된다. 작가생활 50여 년에 그만큼의 편수라면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더구나 4, 5편을 제외하고는 거개의 모든 희곡작품이 무대공연에 올랐으니 작가의 명예요 행운이요, 그만큼 풍부한 광맥이라고 할 것이다. 노경식씨의 열정과 업적에 박수를 아니보낼 수 없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노경식의 희곡작품 총량 중에서 반수 이상이 ‘역사극’을 차지한다. 그것은 작가로서 그의 역사인식이 투철하고 역사에 관한 천착이 깊음을 의미한다. 대학시절에 그의 전공이 문학이나 어학 같은 인문학 분야 아닌 사회과학(경제학)을 공부했고, 또 그가 곧잘 평소에 이야기하는 현대사회와 역사 현상에 대한 깊은 성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유사 이래 최대의 국난인 ‘임진왜란’을 시대배경과 소재로 한 역사극은 6편이나 된다. 일찍이 내가 연출했던 <침묵의 바다>를 위시하여 <징비록>(국립극단 75) <江건너 너부실로>(극단연인극장 86) <萬人義塚>(육군예술단 86) <두 영웅>(2007 未公演)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2011 新作) 등등. 특히 임진정유 국난 때의 僧義兵大將 사명유정대사에 대한 관심은 남다른 바 있다. 1997년 봄 불교방송(BBS)의 라디오드라마 「고승열전」에서 사명대사를 3개 월 넘게 극화하고 역사소설(상중하 3권)로 펴내고, 또 이것을 <두 영웅>이란 장막희곡으로 집필하였으니 그의 의지와 경도를 알만하다. ‘두 영웅’은 사명당과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지칭하는 말. 사명당 유정대사가 임진정유의 戰後處理와 講和問題를 논의하기 위해 一葉片舟에 몸을 싣고 일본 땅에 건너가서 그의 8개월간 활약상을 묘파한 이야기이다. 모쪼록 이 勞作이 연극무대에 오르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而立의 30대 시절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서 노경식씨와 나는 古稀의 70 고개를 넘어 인제는 八旬을 바라보는 늙은 나이에 들어섰다. 연전에 제1권「달집」(2004)에서 내가 쓴 ‘발문’(뒷풀이글) 중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끝을 맺기로 한다. ‘우리가 함께 작업을 할 때면 언제나 남의 의견을 성실하게 듣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한결같은 극작가 노경식씨! -- 그런 그도 인제는 어느 덧 인생 칠십 고희를 바라보는 원숙한 연륜에 이르렀다. 굳이 바라건대 피차 건강한 가운데서, 그의 또 하나의 멋진 야심작을 내가 연출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노경식희곡집』(전7권)의 완간을 축하하고, 또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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