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長江日記) 05 |
추동 (관객) |
|
제목 : <치마> - 변화있는 기록극이 보고 싶다 등록자 : 추동 등록일 : 2001-08-31
원로극작가 노경식 작 윤우영 연출, 극단 독립극장의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려진 <치마>는 사실, 1998년 <아 정정화>라는 제목으로 공연된바 있다 하는 수정 본이다.
제목이 갖는 치마라는 명칭에서 연유되는 '어머니' 또는 '누이' 라는 이미지와 '정정화여사는 독립운동의 꽃이며 상해임시정부와 고락을 같이 한 여장부이다. 일찍이 백범 김구선생이?‘당신은 한국의 잔다르크요.’라고 칭했던 여자' 올해는 국가보훈처가 정한 ‘보훈문화 확산의 해’이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8월의 독립운동가로 수당 정정화 여사를 선정했다'가 치열하게 다큐멘터리와 연극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윤우영 연출은 <치마> 공연에서 '표현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가장 커다란 변화는 배우들의 마임 적인 표현과 영상의 활용이다. 작품은 실제 있었던 역사를 소재로 하지만 단순히 임시정부를 알리거나 역사를 가르치는데 치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정화와 형사 김태식의 갈등과 쫓고 쫓기는 이야기 전개를 통해 긴장감 있고 스펙터클한 내러티브와 현장감 있는 무대, 그리고 살아있는 캐릭터간의 손에 잡힐 듯한 갈등 등을 통해 극적 재미를 최대한 부각할 것이다.
특히 대형 프로젝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트개념의 각종 영상, 그리고 상해와 중경의 암울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무대, 장강(양자강)을 건너는 배의 재현 등은 현장감 있고 스케일 큰 무대를 선보일 것이다'라는 프로그램이 말하고 있지만 무대 위에서 정작 재현되고 표현되고, 보여진 것은 프로그램이 말한 것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기록극 또는 한 인물의 연대기를 말하는 크로니클에서 연출 윤우영은 좀 더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극을 만들려는 많은 시도와 함께 변화모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극과 다큐멘터리 극 또는 크로니클에서 무대가 갖는 제한과 시간제악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고, 더하여 말하자면 '바뀐 세상'이 라지만 극중 대사가 갖는 일부 여과 없는 정보의 전달은 생각할 고민과 함께, 연출에 의한 정면돌파를 수행하지 못한 책임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내용과 걸맞을 임시정부 연예부장을 통해 만담을 도입하고, 조명과 프로젝터로 배경화면을 구성하는 것과는 달리, 연출에 의한 공연전반에 관한 장악력이 부족했던 극으로 생각되며, 이왕지사 변화모색을 하려했다면 완벽하고 힘있는 장악력으로 정면돌파를 가감하게 결행하면서 우파 좌파 논리에서 그 하나를 딱 꼬집고 틀어 박혔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극단적인 요구도 듣게된다. '적당한 거리두기'와 '적당한 편들기'를 통해 정작 연출에 의한 모든 표현은 중성적이거나 돋보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수 있는 점이다.
역사 기록극은 한 인간의 일대기 또는 역사의 어떤 부분을 사실적으로 무대에서 재현하는 것으로 모든 연극제작들에겐 하나의 장점과 동시에 약점을 갖고 있는 장르일 것이다. 그런 역사 기록중 한 인간의 일대기를 다루는 이번 <치마>공연에서는 연출에 의한 의도가 조명과 회전무대 사용, 음향효과와 함께 프로젝터의 사용과 마임과 그림자 연극 등을 통한 연극적 표현으로 많은 변화를 보여주기는 하고 있음을 변화차원에서 간과해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자기 자신이 둘 사이에 어느 편에 갈 것인가? 또는 어느 부분에 힘을 더해줄 것인가를 선택함에 있어서 윤우영 연출은 주저주저와 함께 중립을 선택하였다는 것이 대체의 중론이다.
대사 부분에서 생각할 점은 모든 임시정부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거주에 대해 '독불장군' 등의 언사로 그를 매도할 수 있는가? 또는 그리고 그 이후 초대대통령이 되는 것에 임시정부 사람들이 반대했었나? 에 관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것이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승전국인 미국의 성조기의 약 3분 동안의 긴 시간동안 중앙 화면 위에 그것을 전시하듯 널어놓은 것과 음향으로 미국국가의 연주를 계속하여 '자주적인 독립국가가 한 번도 없었다'는 패배감의 강조적 객석 전달과, 새로운 시대에 선구적 역할을 한 지도층이 극중 일본 앞잡이 형사로 나온 이로 인해 '원칙이 없는 사회'로 '대한민국'의 도덕성을 한층 끌어내리는 점이 마땅히 검토되고 간과되어서는 안될 문제점으로 함께 간 일행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사실 '일본의 앞잡이가 판을 치는 원칙이 없는 사회'라는 것이 혼란과 해방의 기쁨의 혼돈 속에 이루어진 불가피한 것으로 충분히 여과될 수 있었던 점을 다시 끄집어 들어내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극이 던지려는 화두임과 동시에 작가의 숨겨진 메시지이겠지만 그것이 몰고 올 다른 방향의 파장과 함께 꼭 그것을 그렇게 표현했어야 옳았는가? 에 관한 생각은 '외세에 의존한 독립'의 강조와 함께 꼭 필요한 물음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야기의 구성으로도 사간의 경과에 따라 인물이 변화하는 면을 분장은 제 몫을 하지 못했으며 연기와 발성 역시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지는 못하고 배우 자신의 나이에 맞게 연기한 점이 장점과 동시에 약점을 모두 갖고 있는 기록극이 갖는 병폐일 것이다. 그것에서 벗어난 , 벽을 뛰어넘는, 객석이 졸지 않고 반응하는 기록극이 보고 싶다.
'장강(양자강)을 건너는 배의 재현 등은 현장감 있고 스케일 큰 무대를 선보일 것이다' 라는 프로그램 활자속 말을 연출은 무대에서 표현했어야 한다. 마치 채윤일 선생님의 이강백 작 <오, 맙소사!>에서 처럼.... 그것이 안되면 회전무대를 사용한 일본 연극에서의 연극적 처리 방법처럼.... 그러한 실감있고 현장감이 뛰어난 객석과 무대가 하나로 된 기록극이 보고 싶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