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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인터뷰 기사 및 언론 보도입니다.
 
 
 
[치마] (長江日記) 02 문화일보
 
‘臨政 안주인’의 일기장 증언

"민족을 대표하는 임시정부가 내게 일을 주었고, 나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맡겨진 일을 모른 체하는 재주가 내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아는 사람이 나를 치켜세우는 것은 오로지 나의 그 재주 없음을 사주는 까닭일 것입니다." 조선 말기 참판댁 큰며느리로서의 안락함을 버리고 임시정부와 함께 20세기 우리나라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수당 정정화(1900~1991)여사.
극단 독립극장은 29일부터 9월6일까지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27년간 3만리 장정을 벌였던 그의 일기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다큐멘터리식으로 풀어낸 연극 '치마'를 무대에 올린다.

1900년 수원 유수를 지낸 정주영의 셋째딸로 태어난 정여사는 공조판서를 지낸 김가진의 아들 의한에게 11세에 시집을 갔다. 3·1운동 뒤 시아버지와 남편이 중국으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벌이자 그녀는 단신으로 이들의 뒤를 따랐다.

정여사는 이후 임정의 안살림을 도맡아 보면서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위해 여섯차례나 국내에 잠입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여사는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지만 다시 중국으로 잠입,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해방후 임정요인들과 함께 귀국했다. 하지만 임정을 무시하는 미군정의 정책과 좌·우익의 대립으로 편안함은 물거품이 되고, 급기야 6·25전쟁이 터져 남편은 납북된다. 이승만 정부와 타협을 거부한 정여사는 결국 부역자로 몰려 서울 변두리 허름한 집에서 신산스러운 삶을 이어가다 숨지기 몇년 전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는다.

이 작품은 60년 서울 약수동 집에서 정여사가 임정생활을 기록한 일기를 태우며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돼, 그가 평생 자신의 치마폭에 감춰왔던 구한말의 어지러운 상황, 김가진 이동녕 이시영 김구 등 임정인사들의 고단한 독립투쟁, 윤봉길의사의 폭탄 투척, 좌·우익의 대립 상황 등을 하나하나 파노라마처럼 펼쳐내면서 독립투사들이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를 증언한다.

원영애씨가 정여사 역을 맡았고, 조상건 허현호 권병길씨 등 50대 중견배우들이 김구 이시영 이동녕 역을 각각 맡아 중후한 연기를 선보인다.

연출자 윤우영 대진대교수는 “여사의 삶을 나열식을 탈피해 영상과 그림자 등으로 옮겼다”면서 “시류에 편승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요즘 정치가들에게 묵묵히 자기 일만을 하며 역사 속에서 잊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정여사의 일대기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일인 29일부터 무대에 오른다는 것도 이채롭다. 02-762-0010

/김승현 기자 hyeon@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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