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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희곡집 5권 '서울 가는 길'을 ... 작가의 말
 
작가의 말- 3

『노경식희곡집』5권째를 펴내며

희곡집 제1권 「달집」을 상재한 것이 2004년 6월의 일이다. 때에 나의 요량으로는 한 해에 다섯 권 전부를 한꺼번에 펴낼 계획으로 일을 서둘렀는데,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놈의 타고난 ‘게으름과 느긋함’으로 인하여 때를 놓치고 허송세월 하고 말았다. 해서 인제는 古稀도 넘긴 텃수라 올해엔 작심하고 일을 채근해 봤는데, 상반기에 2, 3 두 권을, 또 하반기는 4, 5권을 펴내게 됨으로써 속마음의 짐을 한껏 털어내고, 나를 아는 세상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의 낯골을 펴게 되었다.

희곡집 전5권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28편. 이것은 2004년도까지의 작품 36편 중에서 간추린 숫자로 무대공연에 올라 비교적 평가 받았던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으랴. 어느 작품인들 하나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으리오만 우선은 이 정도로 선보이고, 다시 훗날에 가서 제6, 제7권을 더 상재하기로 기약한다. 그러니까 나머지 작품들이 아직은 더 책장 속에 있고, 또한 2004년 이후에 발표한 희곡들도 <反民特委>와 <포은 정몽주> <두 영웅> 등등 몇몇이 더 존재한다. 그러고 보니까 작가생활 반백년에 대충 40여 편이 넘는 숫자라면 결코 과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다 밥벌이를 위해 외도하듯이 틈틈이 써온 TV극(MBC「전원일기」, ‘특집극’ 등)들과 라디오드라마를 합치자면 작품 편수는 더욱 많고 늘어난다.
여기서 한 말씀 하고 싶다. 참으로 열심히 쓰고, 열심히 술 처묵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살아왔노라고 감히 자부한다. 척박하고 외롭고 힘든 연극과 문학의 길에서 나 스스로도 대견하고 기쁘고 자랑스럽다. 내친 김에 신상에 관한 넋두리 한 마디 더. 家乘에 의하면 우리 집안은 ‘孫’(자손)이 귀하다고 한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할아버지 3형제 중에서 아버지 한 분이 독자(三家獨身)이고, 나 또한 위 아래로 누이 하나도 없이 달랑 2대 독자. 해서 생전의 할머니가 푸념으로 하는 말씀.
“쯧쯧 -- 집안이라고 눈먼 딸자식 하나도 없이 찬바람만 쌩쌩- 돈당깨로!”
온 집안이 돌아볼 것도 없이 적적하고, 나한테는 가까운 친척 하나도 없다. ‘눈먼 딸자식’ 하나가 없으니 ‘고모’라고 불러볼 여자도 모르고 자라났으며, ‘삼촌’과 ‘사촌’, ‘6촌형제’라는 명자 한 개도 없다. 집안이 외롭고 적적하고 공허하고, 온통 찬바람만 돈다. 돌이켜보면 난 어려서(10세) 아버지까지 여의고, 두 과부들(할머니와 어머니) 손에서 서럽게(?) 성장한 셈. 그런데 ‘남의 식구’가 들어오고 나서 딸 하나와 두 아들을 낳아주었다. 얼마나 생광스럽고 기쁜 일인가! 그리하여 시방 요렇게 古稀를 넘기는 나이까지 군소리 한마디 없이 고생하며 곁에서 지켜준 나의 내자가 고맙고, 그 자식새끼들에게는 왠지 미안하고 애잔한 마음이 뭉클 치솟아오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라고 남들처럼 별로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나름대로 삐뚤어지지 않고 장성해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가고 지내니까. 그러고 또한 ‘별볼 일 없는 작가’ 노경식을 따뜻이 사랑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고, 끊임없이 돌봐준 나의 모든 이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

나는 성격상 내놓고 큰소리 치는 버릇은 무디나 속마음으로는 “숨은 욕심”이 어지간히 많다. 그러므로 앞으로 힘과 기력이 미치는 한 몇 개 작품을 더 생산하고픈 생각이 굴뚝 같다. 그럴 요량으로 현재 구상중인 소재와 자료도 가지고 있다. 그같은 생각과 과욕(?)이 어느 날 어느 시까지 나한테 허용될 수 있을지, 아니면 다만 품은 생각에만 그치고 말지 모르겠으나, 한갓 가벼운 꿈과 허망과 도로에만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어떤 연극인 어른이 하신 교과서 같은 말씀 --
“연극이란 종국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야. 그 주인공들의 인간 내면과 시대와 역사, 당대의 사회상을 깊이 있게 천착하고, 한없이 아름답고, 따뜻하게 정서적으로 -- 그런데 그게 간단하고 손쉽질 않아서가 문제예요! 허허.”

‘노경식 작품세계’의 논문 게재를 쾌히 허락한 한옥근 교수님, ‘뒷풀이글’을 새로 써준 연극인 벗 구히서님, 사진예술에 요새 푹 빠져 살고 있는 대배우 권성덕님, 또 한 개의 ‘뒷풀이글’을 마련해준 따뜻한 고향친구이자 언론인 한보영님에게 감사한다. 그러고 앞서 첫 권에서도 한 말이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도서출판 연극과인간의 박성복 대표님 및 수고하신 편집 제작진 모두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거듭 전하는 바이다.

기축년(2009) 시월 상달에,

櫓谷, 下井堂 노경식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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