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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젊은 날의 명동노트 추억담
 
[젊은 날의 명동노트]

명동국립극장에 올려진 ‘달집’ 사연


본인의 첫 장막극 <달집>이 명동예술극장에 올려진 것은 1971년 가을시즌 때의 일이다. 벌써 40여 년 세월이 가까워오고, 나 또한 古稀를 넘긴 연치가 되었으니 까마득한(?) 옛일이란 생각. 때에 나로선 단막극 <철새>가 서울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돼서 데뷔한 것이 1965년도 일이니까, 햇병아리 작가 생활 6년차의 일이다. 지금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연극의 메카가 형성되고 있으나, 그 시절엔 명동극장과 남산의 드라마센타, 까페떼아뜨르 등이 우리네 연극예술의 요람지였을 뿐.
그런 판국에 그해 가을의 연극시즌엔 영미 번역극이 유난히도 판을 치고 있었다. 그럴 밖에 없는 것이 우리 희곡작가의 절대숫자도 부족하고, 새 창작극의 생산이 그리 손쉽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그 외국 번역물 성황의 중심에는 갓 서른 살짜리 아직은 시집도 못간(?) 번역가 박영희씨가 있었다. 그는 그 당시 여석기 교수가 지도하고 있는 「한국극작워크숍」의 나와 같은 동인 -- 그녀의 일생에 관해서는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의 『인물연극사』(한국연극협회, 2009. 8)에서, <영미희곡 번역의 불꽃 같은 삶>이란 제목으로 내가 얼마 전에 그를 추억한 바도 있었다. 그처럼 빼어난 재원 박영희가 71년 한 해 동안에 무대에 올린 번역극은 무려 7편. 상반기 임영웅의 <꽃피는 체리>를 제외하면 가을시즌에 6편이나 몰려있었다. 9월 달 자유극장 김정옥 연출의 <슬픈 카페의 노래>를 시작으로 해서, 10월은 드라마센타 오태석 연출의 <잉여부부>(剩餘夫婦), 극단 산울림 임영웅 연출의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11월엔 전세권 연출의 <여름과 연기>, 제작극회 이완호 연출의 <이탈리안 걸>, 유치진 선생 연출의 드라마센타 <사랑을 내기에 걸고> 등등. 동랑 유치진 선생께서는 그 3년 후에 세상을 버리셨으니 당신의 연출작으로서는 마지막 작품이 된 것.
그런 와중에 창작극 <달집>의 신작공연이 유일한 위치를 차지한 셈이다.
해서 어느 날, 술자리에서 내가 한 말 --
“명동 바닥에 연극 간판(포스터)이 모두 박영희 번역이다! 야, 박영희가 한극연극 죄다 말아묵을래?”
“내가, 뭘? 자기네들이 작품 없다고 달래잖아? 호호.”
그리하여 노경식 <달집>이 바야흐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기연이 마련된 것.
그 박영희가 어느 날 내가 근무하고 있는 출판사 편집국으로 전화를 해왔다.
“노경식씨 -- 자기야, <달집> 원고 좀 볼 수 없어?”
“왜?”
“으응, 누가 작품을 보자고 해서. 내가 작품이 좋다고 자랑했거든?”
여기서 박영희의 ‘자기’란 언사는 행여 오해 없기 바란다. 그때의 우리 ‘워크숍 동인들’은 그런 호칭에 서로 익숙해져 살았으니까. <달집>과 명동국립극단과 임영웅과의 3각 인연은 임 선생의 다음 글로써 이해할 만하다.
“일찍이 아깝게 우리 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간 박영희라는 희곡 번역가가 있었다. 71년 어느 날 그녀가 나를 찾아와서, 내가 연출했으면 좋을 것 같은 창작희곡이 있다고 <달집>을 추천했다. 원고를 보자고 했더니 당시 여석기 선생님이 간행하던 『연극평론』(제4호)에 실릴 예정이어서 지금은 인쇄소에 있다고 말한다. 급한 마음에 교정쇄라도 보자고 했더니, 당장 작가 본인에게 연락을 해서 정말 교정쇄를 가져왔다. -- 나는 그 즉시 <달집>을 국립극장에 추천했다.” 그것이 바로 국립극단 제61회 공연, 임영웅 연출로 1971년도 9월 달의 일이다.
명동국립극단의 <달집> 공연은 그해의 “우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아냈다. 작가 본인도 스스로 놀랬지만, 그해의 <달집> 공연은 우리네 창작극 가뭄에 단비라도 만난 듯 칭찬과 평가가 좋았다. 특히나 주인공 간난노파 역을 맡은 백성희 연기는, 그후 38년이 흘러간 오늘날에도 백 선생님의 “명배우의 명연기”이자 한국연극사상 “명품”으로 길이, 오래오래 인구에 회자되고 있음이다. (끝)

** 명동예술극장 '웹뉴스레터' 2009 1호(9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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